장례지도사가 되기까지(계기, 진짜이유)
사실 처음부터 장례지도사를 꿈꿨던 것은 아닙니다. 30대 초반, 하던 사업이 결혼과 함께 어려워지면서 생계를 위해 병원 전산직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이 정상적으로 개원하지 못했고, 부설로 운영하던 장례식장에서 하나둘 장례 업무를 맡게 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잠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산 쪽으로 다시 이직하기 전까지 버티는 중간 과정 정도로 여겼습니다. 젊을 때라 전공에 대한 자존심도 있었고, 솔직히 장례 일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싫어하는 눈치가 보였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장례 일을 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기 어려웠습니다. 그때는 저도 이 일이 제 인생에서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 몰랐습니다.
처음 고인을 마주하던 날
그러던 어느 날, 직원 한 명이 갑자기 일을 못 나오게 되면서 제가 대신 염습(고인의 몸을 정갈하게 닦고 수의를 입혀드리는 절차)을 도와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장례지도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들어간 자리였습니다.
그때는 정말 손이 떨렸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서 있기만 했습니다. 그때 선배님이 제 옆으로 조용히 다가오셨습니다.
“그냥 편히 주무신다고 생각하고, 내가 하는 대로 거들기만 해.”
잘 들리지도 않을 만큼 긴장한 상태였지만, 그 한마디에 간신히 흰 가운을 입고 고인 옆에 섰습니다. 그리고 선배님이 하시는 대로 아주 서툴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선배님의 손길이 바꿔놓은 생각
선배님은 말이 많지 않았습니다. 고인의 몸을 조심스럽게 닦고, 수의를 한 벌 한 벌 정성스럽게 입혀드렸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손길을 따라 하기만 했습니다. 등에 식은땀이 줄줄 났습니다. 무섭기도 했고, 긴장도 많이 됐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자리에 책임감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고인을 모신다는 것이 단순히 무섭고 피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이 제 마음이 조금 바뀌기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장례지도사라는 일이 사람의 마지막을 정성껏 모시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어렴풋이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만두지 못한 진짜 이유
그날 이후에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원래 하던 전산 일을 다시 찾아보고 싶기도 했고, 장례 일이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낯설고 불편했던 장례 현장이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한 고인을 입관하고 분향소에서 제사를 마친 뒤였습니다. 고인의 배우자로 보이는 할머님께서 제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너무 고맙습니다. 좋은 직업 가지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유가족에게는 그것이 큰 위로가 되었던 겁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이 일은 단순히 절차를 진행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요.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8년이 지난 지금도 이 일을 하는 이유
솔직히 말씀드리면 장례지도사 일은 쉽지 않습니다. 24시간 대기해야 할 때도 있고, 명절이나 휴일이 따로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매일 누군가의 이별을 마주하다 보면 감정이 소진될 때도 있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님을 마주할 때는 아직도 마음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망연자실한 가족 옆에서 “지금은 경황이 없으시니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으로 붙잡았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8년이 지나고 보니 이 일은 제 삶을 바라보는 눈을 바꿔놓았습니다.
수많은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보며 하나를 배웠습니다.
잘 사는 것만큼, 잘 보내드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
처음에는 선택이 아니라 우연처럼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자리가 제 자리라는 것을 압니다.
가족의 반응과 어머니의 응원
처음 장례 일을 시작했을 때 주변 반응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저 역시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딱 한 분은 처음부터 반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저희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힘든 일이지만 사람을 위한 좋은 일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전화드릴 때마다 “파이팅”이라고 해주셨습니다.
그 말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됐습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어쩌면 제가 이 일을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걸 먼저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며
장례지도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처음부터 멋지거나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려움과 망설임, 생계를 위한 선택에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유가족을 만나고, 고인을 모시고,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면서 이 일이 가진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블로그에서는 18년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장례 절차, 장례 비용, 조문 예절, 무빈소 장례, 가족장 준비 방법까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가겠습니다.
장례는 언젠가 누구에게나 필요한 정보입니다. 미리 알고 있으면 조금 덜 당황할 수 있습니다.
※ 본 콘텐츠는 장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된 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정보 공유 글입니다. 개개인의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기준은 달라질 수 있으니, 구체적인 장례 준비 시에는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하여 진행하시기를 권장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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